일급살인


케빈 베이컨 주연의 ‘일급살인’은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권이 극심하게 훼손되는 현장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당해가는 무력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하지만 그 끝에서도 사그러지지 않는 부활의 의지를 소리친다.

단지 5달러를 훔쳤다는 이유로 악명높은 감옥 ‘알카트라즈’에 수감된 헨리 영은, 탈주에 실패한 후 막무가내의 린치를 당한 끝에 햇볕도 들지 않는 독방에서 무려 3년 2개월을 보내게 된다. 그 오랜 기간동안 그에게 허락되었던 운동시간은 단지 30분. 밀폐된 작은 공간 안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래전 배웠던 곱셈 암산을 되뇌이는 것과 기억에 남아있는 야구경기들을 회상하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속에서의 3년이란 시간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잊어버려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독방에서 나온 헨리는 자기를 밀고했던 죄수를 숟가락으로 찔러 죽이게 된다.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환각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일급살인의 죄목으로 헨리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사법부에 맞서, 헨리의 변호를 맡은 신출내기 변호사 제임스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나간다.
살인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헨리인가, 아니면 헨리를 미쳐가도록 만든 교도소의 불합리한 상황인가.

헨리는 사형을 바라며, 오히려 자신의 무죄가 입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벼운 형에 처해질 경우 또다시 알카트라즈에서 복역을 해야 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비참한 현실. 그 공포에서 도망치기만을 원하고 있는 헨리에게 제임스는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무엇인가, 인간을 박탈당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저 패배자로서 죽어갈 것인가.
제임스에 의해 알카트라즈의 참혹한 현실이 폭로되어가면서, 가볍게만 여겨지던 사건은 점차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봉합하려는 주위의 압력은 의지할 곳 없는 제임스를 더욱 죄어오기만 한다.

결국 제임스는,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을 받겠다는 헨리를 증언대에 세우는 모험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헨리는 마침내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된다.

헨리는 알카트라즈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나는 무기일 뿐, 그들이 살인자’라고 증언한다. 그 순간 그는 도피를 멈추고 있었고, 그의 의지는 죽음보다 참혹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이는 그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배심은 헨리에게 일급살인 대신 3년 징역의 과실치사를 평결한다. 동시에 알카트라즈의 상황을 조사하여 처벌할 것을 권고한다.

이 영화의 끝부분, 헨리 영의 마지막 대사는 특히나 인상깊어, 머릿속에 깊은 충격을 새긴다. 알카트라즈로 돌아온 헨리를 향해 간수가 비아냥거리며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 헨리. 난 네가 보고싶었다.”라고 하자, 헨리는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

“글렌, 넌 날 때릴 수 있어. 나를 다시 그 독방에 넣을 수도 있다. 니가 원하는건 뭐든지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나에겐 중요치 않아. 난 이겼다. 넌 나한테서 절대로 그걸 앗아갈 수 없어.”

내 생각도 그와 같다.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비록 그러다 죽어도 결국은 이긴 것이다.

처음의 그에게 승리와 패배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저 도망치고 더 이상은 고통이 없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제 그는 패배하지 않기를 원한다. 불합리한 폭력에 지배당한 채 자기를 잃어가는 것에 반항하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켜 온전히 하려는 그 자존심이 결국 ‘인간의 조건’이 되는게 아닐까.

‘인간’은 결국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만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실존인물인 헨리 영은 일급살인의 재판을 마치고 알카트라즈로 돌아온 직후에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분명 인간의 모습으로였을 것이다.

Mr.glenn, you can beat me. you can put me in the hole.
whatever you wanna do, It doesn't matter to me.
I won. you can't ever take that away from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