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좀 멀게 기억되는데, 옛날에 읽었던 일본 소설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호쾌한 레이서의 일말의 갈등없는 삶을 다룬 이야기였더랬죠. 자신의 순수한 열정 또는 욕망을 따라 레이싱 트랙을 달리고 미모의 재벌 스폰서와 연애하고, 거리낌없이 방탕한 젊음을 소비하며 즐기다가 마지막엔 교통사고로 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삶의 태도가 그리스인 조르바와도 좀 닮아있는듯 하네요.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레이서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대략 그러한가봅니다. 이 영화 러시에서도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제임스 헌트. 이러한 파멸형의 이미지를 스스로 독백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가까이 있는 것에서 여자들이 매력을 느낀다나.

그리고 또 한 명. 레이서같지 않은 성품의 회사원스러운 레이서도 등장하죠. 니키 라우다. 이분은 단지 자기가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에 레이서라는 직업이 있었을 뿐이라네요. 때문에 근면 성실하고 고리타분한 천재 레이서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저는 이쪽이 좀 더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전쟁이 싫지만 생계때문에 군인이 되고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전쟁영웅이 되지만 성품은 소시민이라는 설정의 양웬리 식 캐릭터가 주는 의외성의 인물 매력이죠.

이렇게 다른 성품의 두 주인공을 따라 엇갈리고 부딛치며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그 각각의 삶의 방식을 관조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열정, 라이벌, 승부, 사고, 빗길 레이싱 헬멧에 뚫은 구멍같은 소소한 디테일 등등까지. 러시는 1976년 F1 그 자체를 박제한 영화라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