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추억함

그를 추억함 
   
   
   전용태 
   
   
   
   1. 회상.. 
   
   그의 입원실을 물으면서.. 병원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아니 그 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하기 까지도...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사실은 아무 것도 믿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거짓말일거야.. 그런 생각들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더욱 서두르도록 만들었을 뿐. 
   입원실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보고서야 그것은 현실이었다. 
   붕대를 칭칭 감은 머리. 입에 달려있는 산소 호흡기... 
   내가 들어섰을 때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어야 옳았다. 힘없는 미소라도 지으며 아무 일 없다는 표정 지으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이자식 큰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랐잖아.’ 하고 머리에다 아프지 않은 알밤을 먹여줄 거였다. 
   ...그의 감긴 눈은 떠지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현우 대신으로 옆에 서 있던 지연이가 “서둘렀네요.” 하고 마른 소리로 아는 체를 했을 뿐. 
   “어떻게 된거야?” 
   그녀는 이번에는 아무 대답이 없다. 
   대신 몸을 숙이고 현우를 덮고 있는 이불을 약간 들춰 내렸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우의 오른쪽 팔.. 팔꿈치로부터 아래쪽이 잘려나간. 
   무슨...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의 반이 잘려나간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눈으로만... 온통 웽웽거리는 머릿속은 놀람과 분노. 나중엔 저주로 터져나갈 것만 같다. 
   “어쩔 수 없었어요.. 수술할 수 밖에. 그가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거 알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았다. 
   오늘 아침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양복을 껴 입고 어색해 하던 그의 미소와 내가 해 주었던 격려의 말. ‘축하해.. 만화가 이현우의 첫걸음.’ 그보다 전에는 당선 통지서를 받아 쥐고 기뻐하던 그의 모습... 하나하나가 떠올라서 못 견딜 정도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바로 그 수상식이 있는 날이었었다. 그랬는데... 
   깨물고 있던 입술이 터졌는지 입 안에 찝찔한 것이 밴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지연이를 돌아보니 그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2. 회상.. 
   
   나는 소극적인 성격이었고 그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체로 그 고교생활을 끝내버렸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지 않은건 어느정도 둘 사이에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림 잘 그리네.” 
   어느 쉬는 시간. 참고서의 한 귀퉁이에다 끄적끄적 낙서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낮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거기에 서 있었던 게 바로 현우였다. 그가 한 뭉치의 노트를 가지고 와 보여준 것은 다음날의 일이다. 추억하기로... 그것은 스케치와 모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따로 잘 철해진 캔트지 묶음에는 썩이나 잘 된 습작이 하나. 
   우리가 친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 3의 봄이었다. 분명 현우의 방황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일류대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현우의 꿈은 만화가가 되는 거였으니까. 
   현우는 아버지에게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고, 그 때문에 뺨을 맞았다. 책장 가득 꽃혀있던 만화책과 모아 뒀던 자료들이 다 태워졌다. 그날 현우는 가출을 했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만화는 그릴 수 있잖아.’했던 내 설득은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젠 어쩔거야.. 집엔 안 들어갈거니?” 하는 물음에 “글쎄.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농담 비슷하게 대답하고선 씨익 웃음짓던 현우..였다. 
   현우는 대학을 포기하고 졸업 후에는 만화가로 데뷔했을 거였다.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하고 또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해 7월 현우의 아버지가 뇌졸증인가 하는 병으로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셨다. 결국 현우는 만화를 포기했고 그 다음해 Y대에 입학했다. 
   졸업식 이후로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음울해 보이는 마지막 모습을 선물로 간직할 수 있었을 뿐 나를 피해다니는 그를 쫒을 용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2년인가가 지난 후였다. 나는 만화가로서 꽤 인지도도 얻었고 잡지 하나에 장편을 연재하고 있었다. 가을 날이었는데... 
   아침부터 누가 벨을 눌렀다. 마감에 시달리느라 퀭한 눈을 비비며 현관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커다란 짐가방을 어깨에 둘러 맨 체로.. 
   “나 학교 때려쳤어.” 
   그리고 그는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시스트가 필요하지 않아? ...유능한.” 
   
   
   3. 회상.. 
   
   나는 또 기억한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반쪽만 남은 오른팔을 보게 되었을 때의 그의 표정을... 
   그는 어째서냐고 묻지 않았다. 그 고통과 절망과 분노의 절실함은 내가 느꼈던 것보다 몇만배나 컸을 것임이 틀림없는데도 단지 처음의 그 넋나간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고개숙여 보이는 것 만으로 고함과 울음,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저주를 대신하였을 뿐. 
   심하게 떨리고 있는 다른 한 쪽 손을 움직여 뭉퉁한 팔꿈치 끝을 만져보면서 그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것이 제발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마는 따위의 내용이 아니기를.. 마음 속으로 빌 수 있었을 뿐. 나는 그에게 한마디도 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다시 들렀을 때 나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침대가에 시체처럼 걸터앉아 흐느끼고 있던 현우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고 내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켜본다. 
   “현우야...” 
   그의 흐릿한 눈빛이 아래로 향하고 고개가 다시 숙여졌다.. 잔뜩 매마른 입술이 떠듬떠듬 움직였다. 
   “아냐...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이젠.. 만화.... 못 그리겠구나.. 그러니까... 눈물이... 나왔어..” 
   그의 목소리는 절망만큼이나 짙은 허무로 가득 차 있다. 
   
   한달 정도 지나서 현우는 퇴원을 했다. 어머니는 현우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랬고 지연이의 생각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너하고 사는 편이 마음 편하고 좋아.. 설마 이젠 쓸모없다고 쫒아내는건 아니겠지?” 하고, 자조하는 듯한 그의 농담에 나는 어설픈 미소조차 지어보일 수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거의 많았다. 빌려온 비디오를 보거나 만화책을 뒤적거리거나 하다가 그것이 재미없어지면 작업하고 있는 옆으로 와서 이것저것 참견을 하곤 했다. 
   “바보.. 구성이 엉성하잖아. 이렇게 밖에 못하는거야 설마?” 
   라든지 
   “이 그림은 비례가 않 맞았어.” 
   ...... 
   나를 지켜보고 자신과 비교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자각하였을 것이다. 더이상 펜을 잡지 못하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것이 얼마만한 고통이고 절망이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을 뿐 알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고 곧잘 지어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이 현우 나름대로 자신과 싸우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그 웃음띈 얼굴과 싱거운 농담들이 결국 상처입은 자기 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면 나는 원래의 그를 가끔 볼 때가 있었다. 그날.. 왼 주먹으로 거울을 쳐서 부수고 피가 배어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섰던 현우는 언젠가 병원에서 흐느껴 울던 때의 그와 같았다.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죽음을. 
   
   지연이가 놀러온 여느 평범한 날들 중의 하루였다. 현우의 방 쪽에서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리고 내가 달려가서 본 것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쓰러져 있는 현우와 그의 한쪽 손목을 온통 적시고 아직도 뭉클뭉클 피어나고 있는 붉은 피. 그 옆에 떨어져 있는 톤(Tone)자르는 카터... 
   어느 가을날이었고, 밖에서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그런 날이었다. 현우의 자살.. 나는 그 방문앞에 굳어 선 체. 현우의 누워있는 모양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무언가가 귀를 윙~~하고 울린다. 툭.. 손에 들고있던 원고 뭉치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흩어졌다. 
   엠블란스가 도착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몇명의 흰 옷 입은 사내가 들것에 그를 실어나르고 지연이를 부축하며 방을 나가려던 나는.. 문을 닫다가 현우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스케치북 하나를 발견하였다. 
   반쯤 그리다 말은 그림... 선이 삐뚤삐뚤하고 보기 흉한 것은 왼손으로 그린 때문일 것이었다. 그 끝에는 연필로 깊게 패인 자국이 나 있고 부러진 연필심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그 겨울에 현우는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다시 돌아 올거지?” 하는 물음에 그는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 
   나는 또 바랬다... 그가 찾는 것이 단지 방황과 죽음이 아니기를. 그 뒷 모습에서 쉽게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모른다.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는 슬픈 예감...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던거야. 그러니 나는 선택할 수 밖에 없었어. 다시 부활하거나... 죽거나..” 
   그게 몇 년 전의 일이다. 
   
   
   4.에필로그..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누군가로부터의 초청장을 받은 것은... 
   ‘부활 기념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짐작한 것은 낮익은 필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몇일 전 모 만화잡지에서 ‘이현우’란 작가명을 발견하고 동명이인인가 하여 의아해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