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냄새

겨울 냄새 
   
   
   전용태 
   
   
   
   1. 
   가을은, 겨울은 그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가을이고 겨울인 것이 아니다. 
   냄새. 그래... 나를 잡아끄는 건 어떤 냄새들이다. 녹슨 철창을 붙들고 굴러내리는 빗방울. 물이 추적추적 고인 진흙길. 황량한 거리의 풍경을 쓸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 그것들에 어떤 냄새가 섞여있어서, 나는 우연히 들이켜진 그 냄새에 기억 이전의 무언가를 환기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럴 때면 애잔한 느낌에 가슴이 쓸린다. 
   
   그건 보여져서는 안되는 거였다. 
   “뭐야, 이거. 미애 사진이잖아.” 
   형욱이 뱉어낸 한마디에 영우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전혀 생각이 닿아있지 못했던 일이었다. 마냥 심심해하는 형욱의 보챔에 장난감삼아 자신의 다이어리를 건네줬을 때에, 그 사이에 꽂혀있는 사진의 일은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다. 
   “아.. 그거, 이리줘!” 
   영우는 당황해서, 두서없는 동작으로 형욱이 빼어 들고있는 사진을 움켜 나꿔챈다. 덮치듯 부딪쳐오는 영우에게 밀려 형욱은 균형을 잃은 몸을 삐걱대고, 툭... 다이어리는 바닥에 흘러내렸다. 
   “뭐야, 임마. 얼굴까지 빨갛게 돼서는....” 
   다짜고짜로 사진을 빼앗긴 형욱은 어리둥절한 눈동자를 굴리다가는, 곧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기에 파르스름한 장난기를 띄워올렸다. 
   영우는 그 다음의 행동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단지 고개를 조금 숙여 자기가 쥐고 있는 이제는 조금 구겨진 사진을 묵묵히 내려다본다. 
   실수했구나. 씁쓸한 냄새가 목구멍에서부터 피어올라 바짝바짝 입안을 태웠다. 
   이왕 들킨 바에야, 별거 아니야, 그냥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하는 대단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쪽이 모양새도 훨씬 더 좋았을텐데. 그랬던 것을.... 내쪽에서 먼저 나서서 설치며, 오히려 의심을 확신시켜주는 꼴이 되고만 말았다. 
   “뭐야? 영우가 미애 사진 가지고 있는 거야?!” 
   잠들어있던 호진선배는 언제 깨어났는지 몸을 앞으로 한껏 당겨 일으킨다. 
   버스는 대관령을 넘는 중이었다. 산들은 새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다. 거기에 감탄을 보내고 있던 일행들의 이목이, 이제는 영우쪽으로 온통 쏠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렇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중에 미애의 시선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무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사방이 막힌 차 안이 아니었다면 그는 달음질쳐서 자리를 도망쳐버리기라도 했을 거다. 
   “미애 지갑 뒤지면 영우 사진도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미애의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가뜩이나 몸을 움츠리고 있는 영우의 뒷덜미를 잡아 긁었다. 
   “미애는 사귀는 사람 따로 있잖아요.” 
   “아, 그랬지. 뭐야... 핑크빛 사랑의 나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그럼 영우 혼자인 건가.” 
   “핑크빛만이라곤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흐흐... 짝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뭐. 천국하고 지옥을 왔다, 갔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그랬던게 다 파스텔톤으로 뭉개지기 마련이잖아.” 
   호진선배와 형욱은 만담처럼 한마디씩을 주고받으며, 거기에서 재밌어 죽겠다는 기색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하, 영우 니가 군대가기 전에 또 한 건 하는구나.” 
   “그나저나.. 기회가 좋잖아. 이렇게라도 들키지 않았으면 영우 저 바보같은 성격에 지혼자 끙끙대다가 결국 뭐라고 해보지도 못한 채로 지리멸렬해버렸을 거 아니야.” 
   “그러게요. 미애야, 영우 어때? 지금까지 그런 생각 없었다고 해도 다시 한번 봐봐. 지금 사귀는 그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잖아.” 
   뒤를 돌아본 채 의자 등받이 위로 팔을 겹치고 있는, 형욱의 옷자락을 잡아 끌어내리려 애쓴다, 영우는, 
   시선을 흘리다가, 미애와 눈길을 마주친다. 어색하게 굳어있는 그 눈빛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만다. 
   
   민박집에 도착한 후로 영우는 내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다. 논길을 혼자서 서성거리다가, 또 우연히 일행의 모습이 멀리에 보이기라도 하면 발걸음은 자연히 그들을 피해 반대쪽으로 내딛어지게 된다. 피실피실 헛웃음을 흘려댈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기 거북하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영우는 지금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저녁무렵, 그를 찾은 형욱은 싫다는 손을 한사코 잡아끌고는 영우를 사람들 사이로 밀어넣었다. 사람들이 둘러앉은 방 바닥에는 벌써 비워진 소주병 몇 개가 쌓아져 있었다. 그들은 뭐가 마냥 즐거운지 왁자지껄해하고 있다가는 영우를 돌아보며 일제히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터트린다.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거야. 빨리 앉어! 오늘은 영우 널 위한 실연 위로의 밤으로 하기로 했다. 알지? 술 먹고 죽는 거야. 한바탕 해버리고 나면 아픔도 잊혀지고 세상도 달리 보이고.... 다 그런 거지.” 
   물론 그렇겠지요. 쓰린 속하고 머리를 달래느라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나 있겠어요.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을 상황이라는게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발갛게 술이 올라서는 “마셔, 마셔.”하고 소주병을 기울여대는 지영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영우는 결국 쓴웃음을 흘리고만 말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불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고 술자리의 분위기도 점점 잦아들어갈 때쯤, 영우는 화장실을 핑계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입을 벌리면 두꺼운 입김이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바람도 제법 쌀쌀한 것 같은데, 술기운 때문인지 그렇게 춥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영우는 가게집 앞에 놓여진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다음,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한 개피 꺼내 문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눈길을 피하던 미애의 모습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미애와는 서먹서먹하게 지내게 되겠구나. 어쩌다 마주치면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외면하게 되고 마는 그런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거구나. 씁쓸한 기분이 가슴을 채웠다. 하지만 동시에 ‘뭐, 상관없잖아.’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해가 있으면 있는대로 놔두는 거다. 그것을 일일이 변명하고, 구차하게 자신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진심을 이해시킨다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그런 막막함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귀찮다. 
   좋을대로 나를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고, 떠들어대라. 
   그렇더라도, 미애를 한번은 더 봐야겠다. 그러는 것이 아무리 민망하더라도, 꾹 참고, 남들의 바라보는 시선때문이 아니라,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손시려워.” 
   가까이 들려오는 말소리에 영우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다. 생각에 골몰해 있느라 인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그보다 영우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한 것은 그 목소리였다. 낮익은 어조와 음색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환기시키고, 영우의 주의를 허공에 떠있던 공상에서 끌어 뽑아냈다. 
   “담배피고 있는 거야?” 
   팔을 엇갈려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몸을 움츠린 채 연신 하얀 입김을 피워내고 있는 미애의 양 볼은 찬 겨울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인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설마 나를 찾아 나온 걸까. 어떤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하는 걸까, 미애의 이런 태도는. 혹은, 아닌 걸까..... 뿌연 어둠 너머로 그녀의 표정을 읽어내느라 조금을 버벅대다가, 실패하고, “으,응.” 영우는 더할 수 없이 부자연스런 대답을 겨우 뱉어낸다. 그것이 웃겼는지, 미애는 ‘뭘 그렇게 기운없어하고 있는 거야.’ 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거니? 오늘 일.” 
   미애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불쾌하다니...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사람들이 너무... 그러니까, 그게 당황되고 부담스러웠을 뿐이야.” 
   “너한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뭐를?” 
   “그 사진. 몰래 훔쳐서 가지고 있은 거였어. 미안하다.” 
   영우는 안주머니를 더듬어 사진을 꺼냈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것을 미애에게 내민다. 
   “돌려줄께.” 
   그러는 영우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어렸다가, 흩어져 내렸다. 싫지만, 이렇게 하는게 옳은 거다. 그렇겠지, 하고 납득하면서도 거기에 이어 늘어지는 미련까지를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었다. 내민 사진에 미애의 손이 닿는 것을 작은 진동으로 느끼며, 새삼스럽게 흠칫 놀라 사진을 쥐었던 손을 뒤로 움츠린다. 
   미애는 사진을 얼핏 들여다보고는 못마땅해하며 이내 눈살을 옥매인다. 그 다음에는 얼버무리듯 하하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필이면 이 사진이니. 더 잘나온 것도 많이 있는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이 아니라 ‘이 사진이었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그녀에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어설프게 꾸며낸 표정으로 그녀의 눈길을 마주하고 있는게 어려워 영우는 그녀 뒤의 산, 등성이께로 시선을 옮긴다. 
   잘됐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아무 이유없는 어린애같은 집착에 얽매여 있는 것이 지긋지긋해지기도 하던 참이 아니었던가. 가슴을 메어왔던 그 한순간의 간절함은 그냥 착각이고 혹은 우연이었다고 단정지어 버리자.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회의하며 매달려 있을 방법도 이젠 없어졌으니, 차라리 잘됐다. 
   단념했을 때, 하지만 미애는 사진을 다시 영우에게 내밀었다. 
   “응?” 
   “줄께, 너한테.” 
   그 이상 자신의 감정이 캐물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미애는 종종거리며 몸을 돌렸다. 
   “빨리 들어와. 사람들이 영우 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애썼지만, 미애의 그 짧지않은 마지막 말에서도 감정의 특별한 방향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 하기만 하다가 결국 아무 답도 찾아내지 못한 채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린다.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흐르던 생각이 하나의 가능성에 미쳤을 때 영우는 인상을 찌그러트리고 만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처구니없이 틀어진 방향으로. 
   
   엠티에서 돌아오던 날은 눈이 많이도 내렸다. 옷이며 머리를 질척질척하게 만들어놓는 눈송이들이 아름답다기보다 그냥 귀찮게만 여겨지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있는 모양이구나, 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자취집에 돌아와서 은수가 여자와 함께있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을 찌푸린 표정으로 몇마디 싫은 소리를 내뱉게 되고 말았다. 난감해하며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그녀를 냉랭한 기색으로 떠나보내고 난 뒤에, 한참 후에야, 심했구나 하고 새삼 후회하게 된다. 이제와서는 별 소용없는 줄을 알면서도 영우는 머쓱해하고 있는 은수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미안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지금 안좋아, 나.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줄래? 아까도 진심은 아니었는데..... 니가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말 좀 잘 해줘.” 
   “괜찮아. 내가 잘못했지, 뭐. 너 내일 돌아오는 건 줄 알았거든.” 
   “그래도, 니 여자친구한테는 그게 아니잖아.” 
   은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잔뜩 과장돼 있어서 오히려 그 한구석에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상관없어. 그렇잖아도 헤어질까 생각 중이던 애야.” 
   감기기운 때문인지 뒷통수가 욱신거려온다. 은수를 향해 몇마디 말을 더 꺼내놓으려다가, 그냥 접고, 그래 너 좋을대로 해라, 그러면서 영우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누웠다. 어차피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닌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든 때문일 거다. 그리고 피곤했다. 
   “처음엔 이런게 아니었는데.... 그애도 나도 점점 달라져 가고, 그런 서로의 모습에 적응하질 못해서 삐걱대기만 하게 되는 거야. 그러면 그런대로 또 그걸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걸까?” 
   대답을 구해오는 은수의 물음들에 대충 생각나는 말을 하나씩 아무렇게나 던져놓으면서 영우는 잠으로 빠져든다. 따뜻하게 달궈진 방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기분좋은 온기가 가뜩이나 무거워진 눈꺼풀을 눌러 닫아갔다. 
   “어쩌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 
   “무슨 뜻이야? 처음에 내가 그녀라고 느꼈던 건 그냥 환상이었을 뿐이라는 거야?” 
   “글쎄. 잘 모르겠다.” 
   
   사진에는 황량한 교실의 풍경이 담겨져 있다. 변색된 낡은 담벽으로 갇힌 채, 쓸쓸하게 늘어선 빈 책상들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망아한 공간. 한참만에 그는 조그맣게 입술을 벌리고, ‘버려진’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거기에 덧붙여본다. 그러고서, 가슴이 쿡, 쑤셔왔다. 
   여자아이는 그 가운데에 서서 무심한, 딱딱한 눈빛을 렌즈에 던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그 차가운 표정이 그녀 주위의 풍경을 지배하고 거기에 하나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특별한 의도를 가지지 않은 사진이 이렇게나 강렬한 느낌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걸까. 
   늦봄, 그러니까 벌써 10개월 정도나 전의 일이었다. 동기 여자애들 몇 명과 수업을 땡땡이치고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 따라 들어가게 된 적이 있었다. 구석의 탁자에 둘러앉아 차례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잡담들로 시간을 채우다가, 어쩌다 꺼내진 화제에 이어져 미애가 자기의 고등학교때 사진들을 꺼내놓았다. 아이들 사이에 돌려지던 그 사진뭉치를 받아들은 영우는 무심히 사진들을 넘겨가다가, 그리고 그 중의 하나에서 문득 손길을 멈추게 되고 말았었다. 
   우연히 보게된 그 한 장의 사진을, 그는 그냥 지나치는 것으로 덮어버릴 수가 없었다. 특별히 어떻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여자아이의 그 표정속에 담겨있는 무언가가 그의 정신, 그 깊은 안쪽을 비집으며 파고들어왔다.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긍정하거나 부정한달 수도 없는..... 굳이 설명한다고 해도 그냥 그런 막연한 어떤 느낌이랄 수밖에는 없는, 
   잃어버리고 있던 기억의 조각. 그것은 그런 것이었을까.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던 애절함, 순간의 그 이상한 느낌도 그렇다면 납득이 될 수 있을까. 
   그새 또 화제가 바뀌어서 아이들은 연예인의 뒷얘기를 떠들어대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어렵잖게 피하며, 영우는 사진을 주머니 속으로 감춰 넣는다. 
   
   호출이 온 건, 독감에 걸려서 코를 훌쩍이며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지내던 며칠 끝의 어느 하루, 겨우 몸을 버티고 일어나 싱크대 위에 쓰레기더미처럼 두껍게 쌓인 식기들을 설거지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주 처음보는 것 같지는 않은,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누구의 것인지 기억해내지도 못하겠을 전화번호 하나가 삐삐 액정에 찍혀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차라리 아주 낮선 번호였다면 영우는 오히려 망설이지 않았을 거다. 확신하지 못하는 어떤 짐작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전화기로 가져가는 손을 막아 세웠다. 
   그것을 일단 옆으로 밀어놓은 채 설거지를 계속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돌려 다른 데에 쏟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상대를 확인하거나 그러기가 싫거든 아예 무시하고 못 본 셈 쳐버리면 되는 거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 하면서도 어쩐지 그 양쪽 다가 쉽지 않았다. 
   영우는 문득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내곤 빨래장갑을 벗는다. 
   -누구세요. 
   전화를 받는 형욱의 목소리에는 졸음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영우는 고개를 힐끔 돌려 냉장고 위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한다. 두시 삼십이분. 이번 방학 계획이 어쩌니 늘어놓더니 결국 폐인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응 나, 영우거든.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빨리 물어. 나 자야돼. 
   “너 이 전화번호 누구네 집 건지 아냐? 이삼육에.... 공육사칠” 
   영우는 말을 마치고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잠깐 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것은 난데없는 웃음소리였다. 자지러질 듯 폭소를 계속하는 형욱의 음성에는 이미 잠기운도 완전히 가셔 있었다. 
   -야. 어설프다. 니 노력은 알겠는데 너무 어설퍼. 하하하.... 아우, 배아파 죽겠네. 
   “무슨 소리야.” 
   -그정도 시나리오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냐? 하하. 알았어, 이제 그만 놀릴테니까... 그런 눈물겨운 짓 좀 그만둬라. 
   “뻔소리 그만 안둘래? 전화번호 누구거냐니까.” 
   -됐다니까..... 그래, 너는 미애한테 아무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전화번호도 몰랐던 그런 거라고 해줄께. 하하...... 이제와서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그렇게해서 니 자존심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야, 뭐. 
   전화를 끊고나서 이불 위로 털썩 몸을 누인다. 싱크대 위에는 퐁퐁을 묻혀놓은 그릇들이 지저분한 거품을 흘려내고 있었지만, 왜인지 그것들을 마저 정리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감기는 어느정도 나았던 것이 아니었나.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미애가 호출을 한 것은 별 대단찮은 사무 때문이었을 거다. 조교누나에게 부탁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임에 어떤 일이 생겼는데 우연히 연락을 맡은 것이 미애였을 수도 있다. 그 비슷한 이유인 거겠지.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면서도, 영우는 ‘그렇지 않다면’의 그 미미한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바보같아서 어처구니없는 공상을 하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고 있는 것 뿐이지. 자조하면서도, ‘만약의 만약’을 가정하고, 의심을 이어가게 된다. 
   흐릿한 기억을 쥐어짜, 그날 사진을 건네주던 때의 미애 모습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때 그녀 눈빛은, 입매는, 손길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나. 
   영우는 팔을 올려 눈 위를 덮는다. 
   신경쓰지 말기로 하자. 이렇든, 저렇든, 자신에게는 그 방향을 틀어놓을 능력이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그래서 끝이 그 ‘만약의 만약’인 거라면, 그때 해 줄 수 있는 말도 이미 정해져 있어서, 바뀌지 않는다. 
   이 사진속의 여자아이는 니가 아니고, 나는 누군가를 사랑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렇겠지만, 그 또한 너는 아닌 거라고. 
   
   2. 
   얼마동안의 해프닝은, 그러나 영화같이 드라마틱한 결말을 남기지는 않은 채 그냥 그대로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그 겨울의 끝에 영우는 촉박한 기간을 남기고 날아든 입대영장을 받아 들었고, 거기에 딸려진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고 다니느라 매일 바빴다. 그러는 동안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많은 날들이 미애와 상관없이 지나갔고, 그래서 영우는 그녀를 잊었다. 
   입대를 며칠 남겨두지 않았던 어느날, 영우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거기에도 어떤 의도가 섞여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그녀를 만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을 같이 걷게 되었던 것뿐이다. 그녀는 조금 지쳐보였고, 흐린 눈동자는 갈라져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때,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그렇게 헤어져 돌아서고 난 다음에는 다시 그녀의 모습을 대한 적이 없다. 
   
   늦은 저녁, 영우는 매서운 추위에 쫓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신호등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동기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야, 너 연락 못받은 거야? 오늘 신입생 환영회하는 날이라서 다들 포맨에 모여있어.” 
   그렇게 끌려간 술집에 미애가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낮설어 보여서 잠깐 시선을 두고 있었더니 그 눈치를 챘는지 승혜가 나서서 설명을 해준다. 
   “미애 남자친구래. 넉살좋지 않니? 남의 과 행사까지 쫓아오고 말이야.” 
   “그러게.” 하고 짧은 말로 받았을 뿐, 영우의 관심은 곧 그들을 지나쳤다. 평소에 꽤나 넓게 느껴지던 술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서로 떠드는 소리로 더할 수 없이 어수선했고, 그런 안에서는 어떤 생각도 길게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모르는 얼굴들에게 쉴 새 없이 인사를 건네고, 술잔을 부딪치고, 대화를 이어가고 하는 것만도 힘이 들어 금방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주위의 소란스러움에 묻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꺼내는 한마디씩마다에 기합을 넣어 외치듯 하고서도 다시 몇번을 되풀이 반복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어서 기운을 빼가며 웃고 떠들고 술마시고, 꽤 오랜 시간을 앉아있은 모양이었다. 술자리가 파장한 다음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오며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선배들을 향해 이차를 조르는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미소짓다가, 그만 들어가 봐야지, 하고 영우는 몸을 돌린다.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파랬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구름의 윤곽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아니, 사실은 그냥 기분이 좋았고, 하늘이 빨갰대도 영우는 또 그것을 나름대로 즐거워했을 거다. 그런 날이었다. 
   몇걸음을 걸어갔을 때였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미애가 있다. 
   “나, 바래다줘.” 
   “남자친구는?” 
   “아까 먼저 보냈잖아.” 
   핀잔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영우는 잠깐 난감해했다가, 그래 신경 못써서 미안하다, 하고 너털웃음을 흘려 보이고만 만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장단을 맞춰줄 뿐, 술취한 여자아이의 괜한 트집까지에 정색을 하고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일 테니까. 
   “술 많이 마셨나보다?” 
   “응. 속이 안좋아. 택시타면 집까지 가는 동안이야 못버틸 것도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보다는 바람쐬면서 좀 걷는게 나을 것 같애. 같이 걸어줄래?” 
   “어려울 거 없지.” 
   “형욱이한테 이런 부탁하면 택시타는 것보다 요금이 더 많이 들겠지?” 
   속이 아프다면서도 그럴 기운은 남아있는지 미애는 농담을 던져놓으며 쿡쿡 실없는 웃음을 씹는다. 
   “후후. 그런 얘기 들으니까 나도 갑자기 먹고싶은 것들이 이것저것 떠오르는데.” 
   “다 말해 봐.” 
   “말하면 사주는 거야?” 
   “대신 봉천동까지 같이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할 걸.” 
   그러면서 꾸며보이는 그녀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잠깐 억지스럽다고 느껴졌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골목길을 따라 걷는 동안 싸늘하게 스치는 바람이 술기운을 걷어 날려보내고, 그래서인지 들떴던 기분도 차차 가라앉아갔다. 돌아보면 나무들은 앙상한 줄기들을 내리고 있었고 길가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는 승용차 위에도 쓸쓸함이 한 겹 얹혀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스산한 기분이 미애에게도 똑같이 스쳐지나갔던 때문일까. 
   “나, 추워.” 
   “그래? 그럼 뛸까?” 
   입매를 굳히며 짐짓 진지한 척 대답을 꺼내놓는 영우를 향해서 미애는 잔뜩 찌푸린 사나운 눈초리를 흘긴다. 
   “옷벗어줄까? 팔짱낄래? 그렇게 묻는게 정상적인 반응이잖아.” 
   “하하. 공짜로 사람을 부려먹으면서 그런 것까지 바라면 안되지.” 
   말을 그렇게 뱉어놓으면서도 영우는 팔을 둘러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그렇잖아도 휘청거리는 그녀 발걸음이 불안스럽게만 느껴져 어떻게든 부축해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자신에게 몸을 기대오는 그녀는 많이 힘들고 초췌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택시 잡을까?’ 하고 영우가 물을 때마다면 어린 계집아이처럼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곤 한다. 영우는 단지 씁쓸하게 웃으며, 하지만 그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영우 니 팔, 너무 따뜻하고 좋은걸. 우리 사귈까?” 
   그것은 계속 이어진 농담들 중의 하나였던 것 뿐일까. 영우는 그녀의 그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몇마디 시덥잖은 얘기로 대꾸한 다음에는 그것이 더 어색해져서 참을 수 없게 되고 말 것 같았다. 단지 어색한 웃음 몇토막을 뱉어 얼버무리며, 그것이 미애가 원하는 대답으로 해석되기를 바란다. 
   한참을 걸었고, 미애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아니면 단지 힘들어서인지, 그러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니?” 
   한참만에야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와 다르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침울하게 들리기도 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장사 잘못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 하고 있었지. 그렇게 핀잔섞인 농담을 던져보려고 고개를 돌렸던 영우는, 하려던 말을 그냥 입안에 삭혀 가라앉히고 만다. 그러는 대신에 그는 걸음을 멈췄고, 잠깐 그녀 눈동자를 마주보고 섰다가, 고개를 숙여 미애의 입술에 조용히 입맞춤했다. 
   겨울이었고, 그래서 날씨가 찼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냥 그런 것들이 이유였을 거다. 
   하얗게 얼어있는 그녀의 입술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던 그녀의 눈빛이 그 한순간 안타까웠고, 그래서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한다면 보다 멋진 설명이 되는 걸까... 아니, 그러지 말고 그냥 그런 날이었던 때문이라고 하자. 밤하늘이 파란색이기도 한 희한한 날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던 거다. 
   미애는 “요금치고는 너무 비싸잖아, 아저씨.” 하면서 흐린 미소를 지었다. 
   
   내일 미애에게 사진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해야 좋겠는지는 또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그러고 난 후에는 그녀를 만나게 되는 일이 영영 다시 없을 거였다. 그는 특별히 그녀를 시간내어 생각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그녀는 잊혀져가게 될 거다. 
   결정지으면서, 하지만 영우는 또한 예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쩔 수도 없는 하나의 냄새가 된다. 
   나는 어느 날 어느 곳에선가 무심히 창문을 열어젖힌 다음, 방 안으로 들이쳐오는 차가운 바람 안에서 이 냄새를 다시 맡게 될 거다. 그것이 비록 하나의 완성된 풍경을 연상시키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그 냄새에서 막연한 어떤 느낌을 떠올려내고, 거기에 반응해 희미한 미소를 짓거나 아니면 조금쯤 가슴저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겨울’이라고 이름붙이게 되는 거다.